인천 강화도 특산물과 은율 탈춤

인천의 강화도는 과거로부터 인삼 순무 화문석 등으로 유명 했습니다. 강화 인삼이 재배 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 고종때인 13세기 부터 입니다. 이후 한국 전쟁 이후 개성에서 인천으로 피난을 온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재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강화도에서만 나는 순무는 동그란 모양에 붉은 색을 띄게 되며 맛이 고소하고 독특한 겨자향이 납니다. 아래 글에서 인천 강화도에 대해서 다양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인천 강화도 특산물과 은율 탈춤

인천 강화도 특산물과 은율 탈춤

인천 강화도 특산물

인천의 강화도에는 순무와 함께 감, 가무락, 까나리, 낙지, 동어 등 여섯까지 예로부터 특산물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별미 라고 해서 강도 6미 라고 불렀습니다. 화문석은 강화도에서 재배한 왕골을 재료로 여러가지 무늬를 넣으며 짠 돗자리를 말합니다. 화문석의 경우 고려시대 중기부터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에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여 외국으로 수출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소래 포구의 새우와 꽃게 웅진의 무공해 해산물도 상당히 유명한 상황입니다.

은율 탈춤 복원

은율 탈춤의 경우에는 원래 황해도 은율에서 전해지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인천지방에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중요 무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 되어 있습니다. 은율 탈춤이 인천에서 전해 지고 있는 이유는 한국 전쟁 때 남한으로 피난 온 은율 출신 놀이꾼들이 인천에서 만나 탈춤을 복원 했기 때문입니다. 봉산탈춤, 강령탈춤과 함께 해서 탈춤에 속하는 은율탈춤은 4월 초파일과 5월 단오 7월 백중에 놀던 것 입니다.

양반과 상민사이의 대립

은율 탈춤은 한문구절 보다는 순우리말로 된 대사가 많습니다. 특히 탈춤이 남녀 관계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 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또한 양반을 조롱하는 내용을 강조하여 양반과 상민 사이의 대립을 표현 했습니다. 모두 6과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등장하는 인물은 22명 쯤 됩니다. 은율 탈춤은 옛날에 난리를 피해 섬으로 갔던 사람들이 다시 나올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 탈을 쓴 데서 부터 비롯 됐다고 합니다.

고인돌

인천 시내 와 강화도 일대에서 고인돌이 발견되어 선사시대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알려 주는 증거 입니다. 그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부근리 고인돌 사적 제137 호인데 높이가 2.6 미터이고 덮개돌은 길이7.2m 너비 5.45m 두께 1.2m 입니다.

강화산성

몽골의 침입을 받아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을 때 쌓은 토성의 일부 입니다. 내성 중성 외성을 겹겹이 쌓아서 만든 산성이지만 지금은 둘레 1.2km 의 돌로 싼 내성만 남아 있습니다. 고려시대 소성현은 1018년 지금의 부평인 수주에 속했다가 이후 경원군 인주 경원부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1231년 몽골의 침입을 받자 1270년 까지 강화도 수도 역할을 했습니다.

인천 강화도 특산물과 은율 탈춤 마무리

인천에는 인천 상륙 작전 기념관이 있는데 연수구 옥련동에 있는 기념관이 있으며 한국 전쟁 초반 북한 인민군의 기세에 밀려서 낙동강 너머까지 밀려 내려갔던 남한은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전세를 뒤집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화도진의 경우 1882년 한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된 곳이며 화도진은 원래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며 인천 앞바다에 자주 나타났던 외국배들을 감시하기 위해서 설치했던 군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는 곳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