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성의 성문 창의문, 혜화문

서울 도성 곳곳에는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4대문과 4소문을 두었습니다. 4대문은 동쪽의 흥인지문, 소쪽의 돈의 문 남쪽의 숭례문 북쪽의 숙정문등이 있습니다. 4소문은 4대문 사이사이에 설친된 문으로 동북쪽의 혜화문 동남쪽의 광희문 서북쪽의 창의문 서남쪽의 소덕문이 있습니다. 국보 제1호인 숭례문은 서울 성곽의 남쪽 대문이자 정문이었습니다. 숭례문의 경우 서울에 남이 있는 목조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때인 1398년에 완성된 것을 세종 때인 1448년에 고쳐 지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래 글에서 서울 도성의 성문 창의문 그리고 혜화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서울 도성의 성문 창의문, 혜화문

서울 도성의 성문 창의문, 혜화문

숭례문의 석축 가운데 무지개 모양으로 문을 내고 그 위에 2층 문루를 올렸습니다. 문루는 대궐문이나 성 문위에 지은 다락집 입니다. 간결하면서 힘찬 모습으로 서 있는 숭례문은 조선 시대 초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 줍니다. 보물 제 1호인 흥인지문은 서울 성곽의 동대문으로 현재는 1869년 새로 지은 것이 남아 있습니다. 흥인지문도 숭례문처럼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문을 내고 그 위에 2층 문루를 올렸습니다.흥인지문은 숭례문과 달리 세부 장식에 힘이 없으며 지나치게 장식을 많이 하는 등 조선시대 후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대문인 돈의문은 일제 강점기 때 헐려 없어졌습니다. 숙정문은 거의 쓰이지 않고 자연적으로 무너졌다가 1974년에 복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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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을 간직한 창의문

4소문 중 지금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창의문 광희문 혜화문이며 광희문과 혜화문은 최근에 복원되었습니다. 창의문은 자하문 이라고도 합니다. 서울 성곽의 4소문 중에서 유일하게 원래의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때 풍수지리설을 믿는 사람들이 창의문으로 드나들면서 왕조가 나쁘다고 하는 바람에 창의문 출입을 금지한 적도 있습니다. 창의문은 작은 규모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단층으로 문루를 올린 모양이 숭례문이나 흥인지문과 비슷합니다. 문 옆에는 성벽의 일부도 남아 있습니다. 문루에는 인조반정때 공을 사람들의 명단이 걸려 있습니다. 이것은 영조때 문루를 고치면서 걸어 놓은 것 입니다.

북대문 역할의 혜화문

동북쪽 소문의경우 원래 홍화문이라고 불렸습니다.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과 이름이 같다고 해서 혜화문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혜화문은 소문이면서 대문 못지 않은 역할을 지속했습니다. 한양과 원산을 잇는 길이 지나는데다가 북대문인 숙정문이 풍수지리상의 이유로 항상 닫혀 있었기 때문에 북대문 노릇까지 했습니다. 혜화문은 일제 강점기 때 헐렸다가 1994년 원래 위치보다 북쪽에 복원 되었습니다. 동남쪽 소문인 광희문은 이름만 보면 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문입니다. 하지만 도성 안의 시체가 모두 이 광희문을 통과해서 나갔다고 해서 시체가 드나드는 문이라는 뜻의 시구문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서남쪽 소문은 소덕문이라고 했다가 문루를 세우면서 이름을 소의문으로 바꾸었으나 일제 강점기때 헐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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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성의 성문 창의문, 혜화문 마무리

혜화문의 경우에도 여행객들이 항상 많고 특히 이용 요금이 무료이며 항상 24시간 이용이 가능한 곳이기 때문에 많이들 방문하시는 곳이기도 합니다.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성문. 조선왕조가 건국되고 5년 뒤인 1397년(태조 5)에 도성을 에워싸는 성곽을 축조하면서 함께 세워졌습니다.

소문 가운데 동문과 북문 사이에 위치하였으므로 동소문 이라고도 합니다. 이용시간 24시간 연중무휴 무료 주소 03076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307 (혜화동, 혜화문)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 도보 5분이면 가보실 수 있으며 서울의 관광을 목적으로 가신다면 방문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