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도시 인천의 개항과 최초의 철도 경인선

인천은 1883년 2월 원산과 부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번째로 개항한 항구 도시로 잘알려져 있습니다. 개항이란 나라와 나라가 무역을 할 수 있도록 항구를 여는 것입니다. 조선 조정에서는 한양과 가까운 인천의 개양을 몹시 꺼려 했습니다. 그래서 원상과 부산을 먼저 개항하고도 한참을 미루다가 인천항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한적한 항구였던 제물포는 인천의 개항과 함께 급속도로 인천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곳 인천에서 서울과 인천을 잇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이 개통된 곳 이기도 합니다.

항구도시 인천의 개항과 최초의 철도 경인선

항구도시 인천의 개항

인천의 개항

인천의 개항으로 인해서 갑작스럽게 다양한 역사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특히 인천은 조미수호 통상 조약을 비롯해서 조선이 외국의 여러나라들과 수호 조약을 맺는 역사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외국 배가 드나들 수 있는 항구 중에서 인천이 한양과 가장 가까웠기 때문에 새로운 문물을 대부분 인천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인천에 각 나라의 영사관을 비롯해서 외국의 금융 기관, 관청, 언론 기관 등이 들어 섰습니다. 외국인을 위한 호텔도 세워졌습니다.

주요기관의 서울 이전

인천에 있던 주요 기관들은 1899년 경인선 철도가 개통 되면서 대부분 서울로 옮겨졌습니다. 외국인이 많이 들어와 살게 되면서 외국인 전용 지역도 생겨났습니다. 이런 지역을 조계라고 합니다. 외국인들은 지금의 자유공원 일대 모여 살았는데 최초의 외국인 회사였던 세창양행, 존스턴 별장, 영국 영사관, 외국인들의 모임 장소였던 제물포 구락부 등이 들어 섰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

경인선의 개통

서울과 인천 사이의 우리나라 처음으로 철도가 개통 되었습니다. 이전까지의 교통 수단은 소나 말 그리고 배 등이 있었습니다. 경인선이 개통 되면서 기계를 이용해서 사람과 물자를 실어나르게 된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경인선 철도는 1896년 미국인 모스가 공사를 시작했다가 자금의 부족으로 공사를 중단하자 일본인이 경영하는 경인 철도 회사가 남은 공사를 마무리 하게 된 것입니다. 1899년 제물포와 노량진 구간이 먼저 개통 되었고 이듬해 7월 한강철교가 완공되면서 노량진에서 서울 구간이 개통 되었습니다.

서울과 인천의 연결

이때의 서울역은 지금의 이화여고 자리에 있었습니다. 1899년 개통된 철도는 총 길이가 약 33.2km였습니다. 당시에 서울에서 인천까지 가려면 뱃길로 8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기차를 이용하게 되면서 1시간 40분 만에 갈 수 있었습니다. 경인선은 해방후에도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었으며 1974년에 서울 지하철과 연결 되었습니다. 처음에 기차를 본 사람들은 쇠로 만든 말이 달린다며 상당히 놀랐습니다. 그래서 기차를 철마 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경인선에 이어서 1905년에는 남대문에서 부산 초량까지 경부선이 개통 되었습니다.

동양 최대의 갑문식 독

인천항 개항 이후 역할은 갈수록 커졌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인천항의 경우에는 파도가 너무 심해서 큰 배를 대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1911년 부터 10년 계획으로 독을 세웠으며(배를 만들고 수리하거나 짐을 부리기 위한 시설)이후 1974년에는 동양 최대의 갑문식 독이 건설 되었습니다. 인천항은 현재 국제적인 항구가 되었습니다.

중국과의 교역

개항 초기 인천항을 통해서 떠나던 교역품 중 80% 정도가 중국을 상대로 무역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과의 교역은 1980년대 이후 청일 전쟁과 제2차 세계 대전 등을 겪으면서 급속히 줄어 들었습니다. 중국이 공산국가가 되면서 국교가 단절되자 교역이 거의 중단 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 다시 중국과 국교를 맺고 교육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자 인천은 북방 정책의 전진기지로서 그 역할이 커지면서 교역 양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 마무리

우리나라에서 말이나 배로 이동 하면서 다니던 시대에 드디어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은 1899년 9월 18일,  철도 시대가 열렸습니다. 경인선 노선 중 노량진과 제물포 즉 인천의 옛 이름 인데 이를 잇는 약 33km 노선이 부분 개통되어 운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00년 6월 홍수로 공사가 지연되었던 한강철교가 준공되자 같은 해 7월 남대문역 현 서울역까지 42km 전 구간 경인선이 개통되었습니다.

경인선이 결국 완성되었습니다. 경인선은 1965년 복선화된 데 이어 1974년에는 전철화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당시 연기와 불을 내뿜는 수레라는 뜻의 화륜거라 불린 기차는 사람들의 엄청난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기차의 위력을 시험하려고 철로에 바위를 가져다 놓거나 철로를 베개 삼아 낮잠을 즐기는 구경꾼도 있었을 정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