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강진, 청자 가마터, 정약용 흔적 다산초당

전라남도 강진에는 유명한 청자 가마터가 많이 발견되고 지금도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다산 정약용이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남겼던 다양한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는 곳 입니다. 백련사 동백숲, 그리고 그 옆으로 이어지는 고개를 넘어가면 이어지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배 생활지이자 학문의 꽃이 피었던 다산초당이 있습니다. 특히 500여 년 동안 고려청자의 본향으로도 잘알려져 있습니다. 청자 문화를 알리기 위한 강진 청자축제가 매년 열리는 곳이며 고려청자 박물관에 방문하면 다양한 청자를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곳 입니다. 아래 글에서 전라남도 강진 정약용 흔적이 남아 있는 다산초당 그리고 청자 가마터 등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강진 다산 정약용

전라남도 강진 청자 가마터

청자 가마터

전라남도 강진은 청자 가마터가 가장 많이 발견된 곳입니다. 전라남도 강진 대구면 일대 에서 만도 180곳의 가마터가 발견 되었습니다. 강진은 도자기를 만드는데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도자기의 재료인 고령토가 생산되며 낮은 산이 많아서 가마를 만들기 매우 적당 합니다. 땔감도 풍부하게 많았기 때문에 가마터가 많았던 것입니다. 발굴된 가마터를 보시면 산 위에서 부터 나무를 베어 사용한 흔적이 차츰 산 아래로 옮겨 온 흔적들이 보이게 됩니다. 사적 제68 호로 지정 된 대구면 사당리 가마터 인근에는 청자의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 1997년에 문을 연 청자 자료 박물관도 있습니다. 고려청자 재현 작업장도 마련해 놓고 고려청자를 재현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구면 일대에는 고려시대 전 시기에 걸친 가마터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푸른 빛이 도는 청자

청자라는 것은 말 그대로 푸른 빛이 도는 자기를 말합니다. 공기 중에 내놓고 낮은 온도로 구워서 붉은 빛을 띄는 토기와는 달리 청자나 백자 같은 자기는 가마를 이용해 꽉 막힌 공간에서 높은 온도로 구워 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청자는 철 성분이 들어있는 흙이며 그릇을 만들고 여기에 다시 철 성분이 들어있는 유약을 발라서 구워 내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시면 굽는 과정에서 철 성분이 푸른 빛으로 변해서 청자 고유의 색을 띄게 되는 것입니다.

다양한 기법의 청자

청자는 처음 중국에서 발달해서 신라시대 말에서 고려시대 초에 우리나라의 전해졌습니다. 고려에서는 청자를 크게 발전시켰고 중국에서 조차 간탄 할 만큼 훌륭한 청자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청자는 다른 색이 섞이지 않게 푸른 빛을 띈 자기로 빚기도 하고 안료로 무늬를 그려 넣기도 합니다. 또한 표면에 홈을 파고 다른 재료를 넣어서 무늬를 새긴 상감청자도 있습니다. 무늬를 새겨서 넣는 방법으로는 양각 음각 투각 등의 기법이 있습니다. 물건의 모양을 따서 만든 상형 청자도 종류가 다양 합니다.

정약용의 흔적 다산초당

강진에는 조선시대 후기의 학자 정약용이 유배 생활을 했던 다산초당이 있습니다. 다산초당은 구강포가 내려다 보이는 만덕산 기슭에 있습니다. 정약용이 18년간 강진 유배 생활 중 10년 정도를 이곳에서 지냈습니다. 만덕산은 차가 많이 난다고 해서 다산 이라고 불렀는데 정약용의 호인 다산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정약용은 이곳 초당에 머물면서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한편 자신의 학문 세계를 정리하여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의 무료 500 여권의 책을 썼습니다. 초당 주변에는 정약용이 차를 끓여 마셨다는 너럭바위 직접 정석 이라는 글씨를 생긴 바위 직접 땅을 봐서 만들었다는 샘, 작은 연못과 연못 안에 돌을 쌓아서 만든 작은 섬 등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전라남도 강진 정약용의 흔적과 고려청자 가마터 마무리

전라남도 강진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고려청자 가마터가 여전히 남아 있는 장소 입니다. 또한 조선시대 후기의 학자 정약용이 18년간 유배 당한 곳이며 이곳에서 그의 다양한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만덕산은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고 있으며 고려청자 박물관에 가보시면 다양한 청자들에 대해서 알아보실 수 있는 곳 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문화재 관광으로도 가볼 곳들이 많은 강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