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역사 세 을나, 관덕정, 영등굿

제주 도청이 있는 제주는 제주도에서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제주도의 중심지였으며 역사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 입니다. 제주에 있는 삼성혈은 제주도의 시조인 세 을나가 솟아났다는 구멍입니다. 삼성혈 옆에 있는 세 을나의 위패가 있는 삼성전이 있습니다. 신라 시대 때부터 세을나에게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아래 글에서 제주도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제주도의 역사 세 을나, 관덕정, 영등굿

제주도의 역사 세 을나, 관덕정, 영등굿

화산활동으로 생성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분들이 관광을 다녀가시는 제주는 180만 년 전부터 10만 년 전까지 여러 차례에 걸친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섬입니다. 한반도에서 제주로 이동하여 살았던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주로 동굴이나 바위그늘에 살면서 사냥과 채집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각종 뗀석기와 정교하게 만든 돌날, 좀돌날 등을 제작하여 생활도구로 사용한 흔적들이 있습니다.

수면이 높아지면서 섬으로 분리

지금으로 부터 1만여 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바다의 수면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제주는 육지와 분리되어 지금과 같은 섬이 되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식생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 한반도 남해안 지역의 새로운 신석기문화가 지속적으로 제주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주의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사냥과 채집및 어로 활동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세 을나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제주도의 계국 신화를 보면 다른 지역과 달리 시조가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고 땅에서 솟아 났습니다. 그리고 시조가 한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 입니다. 원래 제주도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는데 어느 날 땅에서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가 솟아 나왔습니다. 을나는 제주도 말로 족장 우두머리 라는 말입니다. 이들은 사냥을 해서 가죽옷을 입고 짐승의 고기를 먹으며 생활했습니다. 이후 세 사람은 곡식의 씨앗과 가축들을 데리고 온 벽랑국의 세 공주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각자 구역을 정해 농사와 목축을 하며 살았습니다. 훗날 탐라국을 세운 것은 가장 힘이 쎄고 강했던 고을나의 후손들이라고 합니다.

관덕정

관덕정은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입니다. 관덕정 주변은 고려시대인 1105년에 지방관이 파견된 이후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제주도의 중심지 였던 곳입니다. 관덕정 왼쪽에 제주목 관악터가 남아 있습니다. 관덕정은 1448년 제주 목사 신숙청이 군사훈련 장소로 세운 것입니다. 기단을 이중으로 쌓고 건물을 올렸는데 사방이 트인 정자 형식의 건물 입니다. 관덕 이라는 이름은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보는 것이다 라는 말에서 따왔습니다. 무예를 통해서 올바른 정신을 기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관덕정의 경우 정치를 의논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이곳에서 잔치를 배풀기도 했습니다. 죄인을 다스리는 장소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제주도 바다의 신 영등신과 영등굿

해양 지역에서 어디서나 고기잡이가 잘 될 것과 안전하기를 비는 의식이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이것을 영등굿 이라고 합니다. 영등은 제주도 어부와 해녀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풍요를 가져다 주는 여신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영등신은 제주에 사는 신이 아니라 외지에서 음력 2월 초 하룻날 제주에 들어와 해조류와 전복등의 씨앗을 뿌려주고는 보름날 다시 떠나간다고 합니다. 영등굿은 바로 이런 영등신을 맞아 들이고 또 잘가라고 배웅하는 굿 입니다. 영등굿은 잠수굿 또는 해녀굿 이라고도 합니다.

제주도의 역사 마무리

제주도는 육지와 많이 떨어져 있어서  지형이나 기후 등 자연 조건까지 많이 달랐던 탓에 독특한 민속이 많습니다. 제주에 있는 국립 제주 박물관과 제주도 민속 자연사 박물관 남제주의 제주 민속촌에 가면 제주도 만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해녀는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 가장 많고 해녀들의 경우 바다속 10m~15m 이상을 잠수해서 전복이나 소라 같은 해산물을 캐며 지금은 해녀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제주도 여성들의 강인한 생활력을 말해주는 상징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