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 마을과 하회 별신굿 탈놀이

안동 하회 마을을 우리나라에서 잘알려져 있는 유명한 마을입니다. 하회는 물이 돈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물이 하회 마을을 태극 모양으로 휘감아 돌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합니다. 하회 마을의 경우 대대로 풍산 류씨가 살던 마을 입니다. 처음에는 마을을 이룬 것은 허씨 들이었지만 이후에 안씨 집안이 들어 왔습니다. 조선 시대 전기에는 류씨들이 터를 잡았습니다. 현재 화회마을에 남아 있는 양반 가옥들은 대게 류씨 집안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동 하회 마을과 하회 별신굿 탈놀이

안동 하회 마을 

화회 마을을 대표하는 전통 가옥인 양진당의 경우에는 풍산 류씨의 종가 입니다. 충효당의 경우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징비록을 비롯하여 류성룡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회 마을에는 북촌댁 남촌댁 경암정 하동 고택등 중요 민속 자료로 지정된 집들이 여러채 있습니다.

안동 댐 옆에 있는 민속 박물관은 안동 지역의 생활문화를 잘 보여주는 곳 입니다. 실내 박물관에서는 관ㄴ혼상제 의식을 중심으로 안동의 유교문화를 보여주며 이 지방 특유의 민속놀이를 모형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야외 박물관은 안동 댐 때문에 물에 잠긴 마을에 있던 전통 가옥들을 옮겨다 만든 공원으로 도투마리 집 초가 겹집 까치구멍 집 같은 민속 가옥들이 있습니다.

하회 별신굿 탈놀이 

하회마을에는 500여 년 전부터 10년 마다 혹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마을을 지키는 성황신에게 굿을 했습니다. 굿의 일부로 성황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탈놀이가 행해졌습니다.

살펴보시면 하회의 2가지 놀이 가운데 하회 선유 불꽃놀이의 경우에는 선비들의 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하회별신굿 탈놀이의 경우에는 서민들의 놀이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약 500년 전부터 10년에 한번 정월 보름날 또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서낭신에게 별신굿을 해왔습니다.

굿과 아울러 서낭신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별신굿 탈놀이를 하였는데 이는 지금껏 알려져 있는 우리 나라의 탈춤 중에 가장 오래 탈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탈놀이 가운데 탈을 쓴 광대가 양반을 향하여 평소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여 나무랄 수 있었습니다. 양반에게 이날은 수작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 제도는 건전한 비판과 견제가 없는 사회는 온갖 폐단이 발생하므로 탈놀이를 하면서 양반이 서민에게 언로를 개방하는 현명한 방법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놀이가 1928년 이후 단절되었으나 류한상 전 안동문화원장이 하회탈과 함께 발굴하여 사라져가던 것이 재생되었으며 전 서울대 이두현 교수에 의해 해외주재 대사관을 통하여 외국에 하회탈춤이 널리 홍보되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와 동호인에 의해 상설공연장에서 매주 개최되고 있을 정도로 활성화가 되었습니다. 놀이마당은 무동마당 주지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마당 양반과 선비마당 혼례마당 신방마당의 8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탈을 태우며 즐기는 뒷풀이가 없는 것이 특징으로 잘알려져 있습니다.

전해져 내려오는 하회별신굿 탈놀이가 17세 처녀인 서낭신을 위로하기 위해 치르는 것이라고 하고있습니다. 하지만 살펴보시면 풍요의례의 뜻도 함께 있는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마지막으로 무당들에 의해 헛천거리굿을 하여 별신굿을 하는 동안 마을에 들어온 잡신들을 보내는 것으로 끝내는 형식 입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이같이 서낭님을 위하는 별신굿 의례의 일부입니다. 안동 하회 별신굿 탈놀이는 우리나라 가면극의 발생이나 기원을 밝히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어 중요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탈놀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회 별신굿 탈놀이 내용은 도리를 어긴 승려를 비판하고 풍자하고 양반과 선비를 조롱하는 것 입니다. 놀이에 쓰인 탈은 10종류로 모두 11개의 탈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하회탈은 병산 마을에 있는 탈 2개를 포함한 국보 제 12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탈놀이가 끝나면 태워 버리는데 하회탈은 보기 드물게 나무로 만들어 졌습니다.